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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Arc of the covenant)
: The story of Blair & Noma 블레어와 노마의 이야기
Episode 1. 블레어와 노마(Blair & Noma)

블레어는 빛나는 광선검을 들었다. 칼자루를 움켜쥘수록 빔의 세기가 강해진다. 굴속에 똬리를 튼 뱀이 낼만한 소리가 났다. 길게 뻗친 광선검의 빔소리를 들으며 블레어는 눈을 감았다.
눈 감으면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을 잊을 수 있다. 드로이드들의 유해가 쓰러져 있는 그곳을 블레어는 유유히 걸어갔다.
광전사인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게 블레어는 어린 시절, 예쁜 소녀였다. 눈 내리는 정원을 거닐며 어린 소녀 블레어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왜 과학자가 되었어요?”
“비밀을 알고 싶어서…….”
“비밀?” 나무에 쌓인 눈덩이들이 바람에 날려 우수수 떨어졌다. 블레어는 아몬드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비밀을 알고 싶어서 과학자가 되었단 말이에요? 어떤 비밀인데?”
“드러나는 세계에는 규칙이 있단다.”
“규칙이 비밀이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파동이다. 저 단단한 바위도 파동이고 이 눈도……”
아빠는 눈을 뭉쳐 블레어에게 건네준다.

“바위의 결정이나 눈의 결정도 파동이야. 우리의 몸도 파동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동?”
“소리는 파동이 되어 흩어지지. 그런데 왜 어떤 것은 입자가 되어 나타날까?”
“눈처럼 뭉쳐서……?” 아빠는 싱긋 웃을 뿐 대꾸가 없다.
“아빠, 그럼 사람의 생각도 파동이에요?”
“그렇지, 우리의 생각은 어딘가에서 입자가 되어 몸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생각에게 몸이 있다면 묻고 싶어요.”
“무얼?”
“아빠를 지켜줄 수 있느냐고……, 눈처럼 흩어지지 말고 아빠를 지켜 달라고!”
블레어는 벽을 향해 눈뭉치를 던졌다. 눈뭉치 일부는 벽에 달라붙고 나머지는 눈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마치 그것이 신호였던 것처럼 적대적인 기운을 가진 드론이 따라붙는다.

드론은 아빠와 블레어를 스캔하며 인적사항을 점검하더니 갑자기 전기 충격파를 발사했다.
“아빠?” 드론이 쏜 충격파를 방탄 외투로 막아내며 아빠가 소리친다.
“블레어, 달려!”
인접해 있던 다른 드론들까지 합세해 부녀를 쫓는다. 드론 하나가 어망을 투척하듯 그물을 쏘 면 아빠의 다리가 바닥에 달라붙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꼼짝없이 잡혔다 생각했을 때 어디선가 날렵한 어쌔신이 뛰어들어 어망을 부식시키는 탄을 쏘고 블레어와 아빠를 구출해낸다.
“박사님, 이쪽으로!”
눈매가 아름다운 여성 어쌔신, 그녀와 함께 두 명의 어쌔신들이 호위 하며 블레어의 아빠를 이끈다. 길모퉁이를 도니 복잡한 기계 장치가 눈에 들어온다.

“박사님, 공간 이동 캡슐을 타세요.”
“왜 하나 밖에 없는 거요?”
“따님은 다른 캡슐로 전송할 겁니다.”
“딸아이가 먼저요.”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닙니다. 박사님에게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어요.”
“딸아일 꼭 부탁하겠소.”
“저희만 믿으세요.”
고개를 가로젓는 블레어를 안심시키기위해 아빠는 할아버지의 유품, 앙크(ankh:샌들의 끈 모양으로 생긴 십자가, ‘생명’을 상징한다)를 건넨다.

“블레어, 이건 할아버지의 유품이야. 네가 간직하거라.”
어린 블레어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슬픈 예감에 눈망울이 젖어있다. 곁에서 호위하는 다른 어쌔신들이 뒤쫓아 오는 드론들에게 광선총을 쏘며 저항한다. 지켜서 있던 여자 어쌔신이 한마디 거든다.
“꼭 다시 만날 겁니다. 어서 빨리!”
블레어의 아빠가 공간 이동 캡슐에 탑승하자 캡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상한 일이다. 이들을 뒤따라온 드론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스르르 멈춰 선다. 여자 어쌔신, 턱을 가렸던 복면을 벗는다. 왼쪽 뺨에 움직이는 전갈 문양의 홀로그램 문신을 했는데 전갈 문신이 붉은 색을 띠며 꿈틀거렸다.
여자 어쌔신, 도베르잔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블레어에게 속삭인다. “미안하구나, 고통은 없을 거야!”
도베르잔은 광선검 자루를 블레어의 심장에 겨누고 그대로 광선 빔을 켠다.
거짓말처럼 심장 부위만 뚫리어 블레어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검붉은 아몬드빛 눈망울에 윤기가 사라진다. 어린 블레어의 눈에 도베르잔의 뺨에 전갈 문신이 꼬리를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회상을 끝낸 지금의 블레어는 광전사의 위용을 드러내며 소리친다.
“My Heart, 나의 심장 노마! 일을 할 때야(It`s your turn!)”
노마가 홀로그램 영상으로 눈앞에 떠올라 마치 팅커벨 같은 자태로 말 붙인다.
“바이저 리소스 No.5! 너의 심장이 차올라 하이퍼 모드로 변환하려는데 어때?”
“아니, 더블 하이퍼로 부탁해!”
“OK, I got it!”
질풍 같은 음악소리와 심장 박동이 올라가고 바이오 수치가 상승하며 블레어는 초인적인 힘을 얻는다.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 았다. 양손에 광선검 자루를 꺼내들면 점점 강렬해지는 광선 빔!

“받아!”
블레어가 춤을 추듯 적들을 광선검으로 내리치면 끊어지는 인조로봇들의 팔과 혈관, 난투의 현장 속에서 한 떨기 연꽃처럼 초연한 블레어의 얼굴표정과 짙은 우수가 배어있는 그녀의 눈 동자……, 어느새 대부분의 적들이 쓰러지고 보스 로봇이 눈앞에 서 있다. 그의 가슴에는 전갈 문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블레어가 보스 로봇에게 전기충격파를 날리면 전자기에 마비가 된 보스 로봇, 블레어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앞에 선다.
“너희들의 정체가 뭐지?” “쉽게 말해줄지 알았나?” “왼쪽 뺨에 전갈 문신을 한 그녀의 이름은 무엇이야?” 보스 로봇은 비웃을 뿐 말이 없다. 블레어는 쓰게 웃으며,
“그냥 물어본 거야, 그쯤은 이미 알고 있지. 내가 찾고자 하는 물건을 건네주면 아무 일 없는 걸로 하고 싶은데?”
“미안하지만 그건 우리한테도 중요한 물건이라서 말이지……” 블레어는 왼손에 든 광선검을 거두어들이는 동시에 다른 광선검으로 보스 로봇을 가른다. 갈라진 몸통에서 전갈이 튀어나와 도망가려는 걸 블레어가 발뒤 꿈치로 가볍게 짓누른다. 블레어는 자신에게 속삭이듯 말 하길,
“나의 복수에는 미학이 있어.” 그리곤 자신의 심장과 대화하듯,
“노마? 여기 있는 게 확실해?”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노마가 홀로그램 영상으로 떠오른다. 노마는 양 미간 사이의 렌즈로 보스 로봇의 사체를 스캔하며,

“응, 손 집어넣어서 그 위쪽을 더듬어 봐!”
블레어는 얼굴을 찡그리며 보스 로봇의 몸통 속에서 아버지에게 건네 받은 할아버지의 유품, 앙크를 되찾는다. 손에 묻은 로봇의 걸쭉한 체액을 털어내며,
“노마! 이것을 분석해줘.”
마치 눈이 뭉치듯 노마는 물질 홀로그램으로 굳어져 뚜렷한 몸을 가지고 블레어의 옆에 선다. 반물질 홀로그램일 때는 짧은 팔다리에 팅커벨 을 연상시키는 앙증맞은 생김새였지만 물질 홀로그램으로 구현화 된 지금은 확연히 길어진 팔다리에 블레어의 허리쯤에 키가 미친다. “블레어, 이걸 찾으려고 우리가 이 고생을 했던 거야?” “고생이라고 할 수 없지. 놀이일 뿐이었어.”
노마는 마치 아귀처럼 입을 크게 늘어트리고 할아버지의 유품을 입에 집어넣는다. 곧이어 분석한 결과를 알 린다.
“GPS 1점 468, 시간우주 도서관 561열람실!”

“시간우주 도서관이라고?” “제 3의 평행우주, 나메이다 행성에 있어. 폐관 시간은 32시 41분!” “평행우주까지? 갈 길이 멀군.”
노마가 앙크를 뱉어내면 그것을 받아내어 살펴본다. 앙크의 둥근 십자가에 박힌 보석 사이로 바라본 세상은 기묘하게도 평화롭다. 노마가 에코가 울리는 코맹맹이 목소리로, “전략을 짤 시간이 필요해!”
“벌써부터 놀 생각을 해?” “워워, 난 너의 심장이야. 많이 뛰었으면 이제 쉴 때도 되었지.” “평행우주를 통과할 우주선부터 구해야 해.”
“내 말이 그거야. 이 도시는 평행우주 여행 금지법이 있어서 되도록 빨리 벗어나야 하지.”
그 말이 불길한 신호였던 것처럼 앙크의 둥근 보석 사이로 이상한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스 로봇이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잔당들이 막중한 병기들과 함께 몰려들고 있다.


노마가 괴팍한 어린아이처럼 소리치길, “워워, 진정하라고! 너희들을 위해 뛰어줄 심장 따위 없어.”
블레어는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노마, 넌 너무 빨리 지쳐서 탈이야.”
“심장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말이지. 미안하지만 하이퍼 모드로 전환할 에너지 따위 없어.”
“그럼 최고의 전략을 써야겠군.”
“그게 뭔데?” “아직도 몰라? 도망가는 거!”

블레어는 연막탄을 쏘며 하늘로 튀어 오른다. 발뒤꿈치 아킬레스에 장 착한 비행 키트가 주변을 반중력 상태로 만들기에 가능한 일이다. 팔다리 늘어진 인형처럼 블레어의 팔에 매달린 노마가 헛구역질을 하며 우는 소리를 한다.
“가끔은 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내가 터질 것 같은 때가 있단 말이지. 우웩~” 적들이 레이저빔을 쏘며 공격하지만 뿌연 안개 때문에 사방으로 난사 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몇몇 레이저빔이 꽤나 위협적으로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간다. 긴박한 그 와중에도 블레어와 노마는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평행우주 돌파하는 우주선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일단 이 곳을 벗어나야 하지.”
“조종사도 필요하지 않겠어?”
“그렇다면 가야할 곳이 딱 한군데 있어.”
때마침 붉은색 레이저빔 하나가 노마의 새끼손가락을 맞춘다.
“에구? 내 작고 소중한 손가락! 더 이상 너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할 수 없겠는 걸?” 블레어가 연막을 피우며 시간을 끌었던 건 비행 키트를 충전하기 위함 이었다. 손목에 찬 비행 키트에 파란 불이 들어온 걸 확인한 블레어는 슈퍼맨처럼 날아오른다.
“우는 소리 그만 해, 우리가 가야할 곳에나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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