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3
패러독스의 여왕
패러독스의 여왕, 퀸은 수심에 잠겨있다. 그녀는 자신의 제국을 완성하기 위해 줄곧 강압적인 체제를 고집해왔다. 갈등의 조짐이 보인다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견이 있으면 처단하고 누군가 반란을 꾸민다하면 그 종족의 씨를 말렸다.
퀸은 사색에 잠겨 오래도록 분수대를 통해 흐르는 물줄기를 관찰했다. 그녀의 궁전을 마치 남과 북으로 나누듯 관통하는 커다란 분수대에는 많은 Ai인공지능 모델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내가 틀렸을까!’
그녀는 오직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의미를 두었다. 물이 흐르고 그 뒤를 다른 물살이 따르듯이, 고도의 기술 성장으로 경제적 번영을 일군다면 어느 누구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산물인 온갖 쾌락과 희열, 인류 역사상 제 아무리 찬란했던 문명을 이룬 왕조라 해도 자신이 이룬 퀸의 제국에선 하층민이 누리는 것의 반도 쫓아오지 못할 것이야!
퀸은 그런 자부심이 최근에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제국에서 불완전함은 용납하지 않았지만 나날이 불협화음이 쏟아져 나온다. 그때,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리!”
도베르잔이 다가온다. 도발적인 표정, 암고양이 같은 그녀의 걸음새가 왠지 꺼림칙하다.
“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누가 너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는가?”
“앗, 죄송합니다. 퀸 마리여!”
“누가 너에게 함부로 내 거처를 드나들라 말하였는가?”
“용무가 있다면 언제든 찾아오라 하셔서…….”
“등 뒤에서 몰래 잠입해 들어오다니! 퀸을 암살자의 표적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죄……죄송합니다. 이름을 알려주시고 편히 대하라 하셨기에…….”
“친근한 것과 무례한 것, 어느 쪽에서 상대를 보아야 더 잘 어울리겠는가?”
“네……?”
“나는 너를 동료로서 인정하는 것이지 벗으로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동등함을 주장하여 퀸에게 함부로 접근할 때에는 동료는 물론 벗으로서의 기품도 잊어버린 것이야!”
“죄……죄송합니다. 제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도베르잔은 바닥에 무릎 꿇었다. 서슬 퍼런 퀸의 기세에 몸이 떨리는 게 느껴진다.
“고개를 들라.”
위로 올려다보니 퀸 마리의 창백한 얼굴이 보였다. 눈에는 서릿발이 서려 이쪽을 보는 시선이 차디차다.
“앞으로는 그 자세로 보고할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가?”
“레드마치 베가스 행성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다. 폭도의 잠입으로 쑥대밭이 되었다지?”
“베가스가 수집해온 유물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바람에 피해가 더욱 컸다고 합니다.”
“폭탄을 수집하는 기괴한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것인가?”
“네, 인류 최초의 원자탄인 리틀 보이가 터지는 바람에…….”
“그만큼의 시간이면 플로토늄의 효력이 다했을 텐데?”
“보존을 잘하는 바람에 방사능의 반감기가 축소된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개인의 취미라지만…… 폭탄을 수집하는 취미는 이해할 수 없군.”
“칼을 수집하는 개인 수집가도 있지 않습니까? 일본도나 명나라 때 쓰이던 칼은 지금도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르치고 있는 듯한 자신의 태도가 못마땅한 것이다. 나름 친절하게 설명하고자 한 건데……
“도베르잔! 너는 내가 일만 번의 자기복제 중에 제 1열 두 번째로 복제한 인물이다. 너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이고, 나의 의지가 곧 너의 의지인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도베르잔은 시선을 피했다. 모든 걸 꿰뚫어보는 듯한 퀸의 눈길이 부담스럽다.
“그 눈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데?”
고개를 사선으로 갸웃거리며 집요하게 눈길을 파헤친 퀸이 루비 보석 같은 붉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물었다.
“도베르잔, 무수한 세월 동안 너만의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너의 경험은 모두 내게 공유된다.”
“알고 있습니다.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그럼 그 불온한 시선은 뭐지? 내게서 몇 개의 가지가 떨어져 나갔다고 뿌리 잃은 나무로 생각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 추호도 한 적 없습니다.”
“흥, 나의 제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 일련의 사건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지?”
“아……아직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흐음~ 그 눈빛은 비밀을 감추고 있군!”
퀸 마리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자리를 벗어난다. 그러더니 가소롭다는 말투로 말 잇는다.
“그래, 비밀은 재산이란 말이 있지. 어디 한번 그대가 발견한 비밀의 창고에서 내가 도달하지 못한 정보들을 캐내와 봐.”
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도베르잔이 도발적인 언사를 던진다.
“허락하시겠습니까?”
“그래, 허락하지! 아무리 그래도 너의 뜻이 나의 의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야.”
도베르잔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퀸의 궁전을 빠져나온다. 그녀의 뒷모습을 쓰게 바라보며 퀸 마리는 윗입술을 깨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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