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아바타 주니토니
비행선에서 노마는 새끼손가락 부속품을 갈아 끼우고 있다. 새로 낀 손가락이 어쩐지 기름칠 덜 된 기계 장치처럼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새끼손가락이 말을 하는군. 블레어를 따라가면 제 명에 살지 못할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빨리 헤어져! 라고…….”
장비를 점검하던 블레어는 손을 내저으며,
“닥치고,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갤럭시 노선이나 살펴봐.”
“난 너의 심장이야.”
“그래서?”
블레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노마를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응시한다. 눈빛에 압도된 노마는 주눅이 들어 말까지 더듬는다.
“날 이리 함……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거지.”
“네가 내 뇌가 아닌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건 확실해.”
“나로 인해 네가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단 말이지.”
블레어는 딴 짓하듯 자신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근데 언제까지 이 고물 비행 키트에 목숨을 걸어야 할까?”
손목에 찬 비행 키트의 배터리 충전량이 좀처럼 차오르지 않는다.
“이래 봐도 최신형 비행 키트야.”
“노마, 너처럼 너무 쉽게 방전되어서 문제란 말이지.”
“그거라면 그 친구가 손봐줄 수 있을 거야.”
“지금 우리가 가는 곳에 있어?”
“그렇지.”
비행선이 흔들리며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알린다.
“행성 성층권 돌입, 곧 목적지에 다다릅니다.”
어떤 행성인지 알아차린 블레어는 소리친다.
“뭐야? 여기 맞아?”
“그렇지!”
행성 진입 입구엔 본 행성에 방문한 걸 환영한다며 홀로그램 영상이 떠오른다. 거대한 광대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라 ‘환락과 도박의 행성, 레드마치 베사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란 멘트를 우주어 문자로 날리며 요란스럽게 조잘거린다.
“노마, 너 혹시?”
과거에 도박으로 큰 변고를 치른 기억이 있는지 노마는 몸을 움츠리며,
“그런 거 아니야, 인재를 스카웃하기 위한 여정일 뿐이라고!”
노마를 미심쩍은 표정으로 째려보는 블레어, 붉은 레드 카펫이 깔려있는 카지노 하우스, 블레어가 노마를 추궁하는 눈빛처럼 자신의 카드패를 노려보고 있는 주니토니…….
“음…….”
딜러는 토끼복 차림의 예쁜 드로이드, 주니토니는 마치 시가를 피우듯 윗주머니에서 조그만 당근을 꺼내어 우아하게 씹어 먹는다. 받은 카드패는 스페이드 쟈니와 다이아몬드 쟈니(J&J)!
딜러가 블랙잭이 아닌 이상 이길 확률 80%, 확률을 무시하고 딜러의 패가 블랙잭이다.
게임에 지고 심기 불편해진 주니토니, 판돈을 두 배로 건다. 첫 카드는 퀸(Queen), 다음 카드 패는 하트 쟈니(J), 블랙잭은 아니지만 지기 힘든 카드, 그렇지만 딜러의 패가 또다시 블랙잭!
샴페인을 나르는 하우스 걸이 다가와 와인 한 잔을 권하지만 주니토니는 기다란 귀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이며 판돈 전부를 건다. 이번 패는 하트4+클로버6, 주니토니는 낮은 중저음 목소리로 말한다.
“더블 다운(Double Down)!”
운 좋게 에이스가 뜨며 숫자 21 완성, 딜러가 블랙잭이 아닌 이상 이길 확률 95%!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윗주머니에서 당근을 꺼내먹으면 딜러의 패가 또다시 블랙잭……, 세상에 3연속 블랙잭이라니!
그것도 20, 20, 21! 지기 힘든 카드들이 모두 졌다. 주니토니는 토끼 수염을 씰룩거리며 윗주머니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꺼내어 쓴다. 선글라스 창에 비친 벌크 업(Bulk-up) 기능을 작동시키면 아놀드 슈왈제네거 부럽지 않은 근육이 주니토니의 몸에서 튀어나온다.
“벌크 업(Bulk-up) 세팅!”
울퉁불퉁 튀어나온 근육, 어느새 각종 수류탄과 산탄 총알로 중무장 한 군용 조끼를 입고 4연발 바주카포를 들며 장전! 주니토니는 당근을 입에 물고 긴 귀를 쫑긋거리며 속삭인다.
“Just a Game, Double Down!(-단지 게임일 뿐, 묻고 더블로 가!)”
잭-팟을 터트리라는 요란한 전광판에 대고 주니토니는 4발 바주카포를 발사한다. 지붕이 뚫리며 순간 아수라장이 된 카지노 하우스, 보안요원인 드로이드들이 달려온다.
“그러게 날 열 받게 하지 말았어야지.”
주니토니와 보안요원들이 막 몸싸움을 벌이려는 순간, 뚫린 지붕 사이로 노마와 블레어의 비행선이 멈춘다.
“쭈니, 넌 언제나 말썽이구나!”
“오랜 나의 친구로군.”
“조심해.”
미처 노마가 알리기도 전에 보안요원이 쏜 충격파에 주니토니가 나가떨어진다.
“블레어!”
노마의 외침에 블레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니토니를 구해낸다. 벌크업 기능이 빠져나간 주니토니는 앙상한 팔다리를 드러냈다. 블레어는 다그치는 목소리로 묻는다.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왜 벌이는 거지?”
“어차피 이 세상은 게임일 뿐이니까.”
“우주 감옥에 갇혀서도 과연 그런 말이 나올까?”
“나의 답은 항상 같아. 누군가 날 구해줄 이 하나 없다면 언제든 이 무료한 게임을 끝낼 때야.”
주니토니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한심하단 눈초리 반, 배짱 하나는 두둑하다는 눈초리 반으로 주니토니를 바라보던 블레어는 광선검을 손에 든다. 앞에서 달려드는 보안요원들을 순식간에 쓰러트리며 비행 키트를 작동시켜 비행선으로 복귀한다.
“노마, 뭐해? 빨리 뜨자고!”
“나 자야할 때야.”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
물리 입자 형체를 잃고 노마는 비물질 홀로그램으로 전이된다. 작고 힘없는 노마는 새끼손가락을 삐걱거리며 희미해진다.
“배 밖으로 너무 많이 나와 있었……”
비물질 노마는 둥지 찾은 아기새처럼 블레어의 심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휴, 도움이 필요할 땐 꼭…….”
이륙하려는데 지붕 모퉁이에서 격자 그물이 튀어나와 비행선을 묶는다. 더군다나 불투명 방어막이 카지노 하우스 전체를 감싸며 곳곳에서 경찰 비행선이 몰려든다.
“어쩌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블레어를 뒤에서 감싸 안으며 주니토니가 능숙한 솜씨로 수동 매뉴얼을 작동시킨다.
“점프 기능을 쓰자고!”
“놈들이 방어막을 쳤어.”
“알고 있어,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군.”
“……?”
주니토니는 현란한 솜씨로 계기판을 작동시킨다.
“꽉 잡아!”
비행선이 워프 이동하며 선체가 몹시도 흔들린다. 앙상한 팔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올까! 등 뒤에서 주니토니가 강한 힘으로 지탱하는 게 느껴졌다. 순간, 블레어는 주니토니에게서 다른 인기척을 느꼈다. 따뜻하기에 상처받기 쉬운 인간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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