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평행우주선 엔터-프라이저 3
물질 홀로그램 상태가 된 노마가 테이블에 진열된 주니토니 컬렉션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다. 아바타 온(Avatar-on) 상태일 때에는 인간보다 우월한 피지컬에 파워를 자랑했지만 이제는 볼품없이 찌그러져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만한 장난감 신세가 된 주니토니들……, 노마는 그런 아바타들을 보는 게 편치 않은 듯 얼굴이 수심에 젖어 있다.
그런 노마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듯 블레어는 루카치에게 묻는다.
“게오르그 씨, 노마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루카치는 복잡한 기계장치들을 개조 중이었는데, 한귀로 흘려듣듯 지나가는 목소리로,
“과거는 묻지 않아, 앞으로 계속 나아갈 뿐…….”
“피-, 그래서 노마를 만나자마자 잡아먹을 듯이 그랬어요?”
“애증이 교차하는 오랜 친구를 만나 봐, 블레어도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겸연쩍은 루카치와는 반대로 블레어는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머? 지금 또 내 이름 불러준 거예요?”
블레어의 반응에 루카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검을 든 광전사일 때는 더없이 진지하고 카리스마 넘치지만 평상시의 블레어는 어쩐지 백치미 가득한 소녀처럼 보인다.
루카치는 우울에 빠진 노마를 의식하며,
“노마가 아바타였던 거 알고 있나?”
“네? 노마가 아바타였다고요?”
“음, 패러독스 퀸의 아바타였어.”
루카치의 한마디 말에 블레어는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라도 들은 듯 화들짝 놀란다.
“패러독스? 그것도 퀸의 아바타였다고요?”
“자신의 분신한테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야?”
“정말 몰랐어요, 이런 주제에 대해선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거든요.”
루카치는 연장을 바꾸어 들며 자유롭게 된 손으로 이마에 땀을 닦는다.
“아바타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지. 경험치를 얻어 독자적인 의식을 쌓아가는 아바타하고 이 연장과 같이 그저 도구에 불과한 아바타, 노마는 퀸의 메인 의식(Main consciousness avatar)이었어.”
“그럼 퀸하고 거의 동급, 뭐 엄밀히 동급은 아니더라도 어찌되었든 대단한 거 아니에요?”
블레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마를 돌아본다. 노마는 들어도 못들은 척, 자신을 두고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뻔히 알면서도 짐짓 태연하다.
블레어는 금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떻게 패러독스 퀸의 아바타가 저럴 수 있지요?”
“뭐가?”
“노마는 대체로 유쾌하고 때때로…… 착해요!”
“지금은 절대 악의 화신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패러독스 퀸은 실험하고 싶었던 거야.”
“뭘요?”
“선을 알아야 악을 알 수 있지 않겠어? 그래서 노마에게 선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의식을 허용해준 거지.”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의식 있는 아바타의 존재는 때때로 주인을 압도할 수 있어. 의식을 확장한 아바타가 힘을 키워 주인을 삼키는 경우도 종종 있지. 패러독스 퀸은 충분히 실험했다 생각하고 노마를 제거하기로 한 거야.”
“그럼 어쩌다가 내 심장으로 이식된 거예요?”
“이식되었다고? 네가 이식된 게 아니라?”
“네?”
“아……아니야.”
“그 표정은 뭐예요? 게오르그씨의 얘기가 확실한 거 맞아요?”
“세상에 확실한 건 없어. 죽고 못 살던 어제의 연인이 오늘은 서로의 등에 총을 겨누는 게 세상 이치라고!”
“그럼 엉터리란 말이네요?”
“그거 역시 모르나?”
“뜬금없이 뭘요?”
“아바타는 본래 1대1 접속이 기본인데, 패러독스는 다중 접속과 다중 케어가 가능해. 노마를 제거한 이는 같은 계열의 아바타였지.”
“같은 계열? 그게 누군데요?”
“노마의 자매격인 아바타라고 할 수 있지. 퀸의 세컨 아바타, 도베르잔!”
“도……도베르잔?”
블레어는 적개심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왼쪽 뺨에 전갈문신을 한 어쌔신, 아빠를 납치하고 자신의 심장을 송두리째 앗아간 철천지원수의 이름을 여기에서 듣게 되다니……. 블레어의 예기치 못한 반응에 루카치는,
“갑자기 왜 그래?”
블레어는 짧은 시간 생각했다. ‘감정을 드러내면 어느 게임에서나 지는 거다. 평정할 순 없겠지만 숨을 내쉬고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는 거야!’
“아……아니에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얼굴인데? 도베르잔과 대결할 생각이면 접는 게 좋아.”
“왜요?”
루카치는 자신의 양쪽 기계 팔을 들어보였다.
“내 꼴 나기 십상이거든! 온갖 속임수와 비밀무기가 난무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어느새 팔다리가 끊어져 있을 거야.”
블레어는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루카치도 그년한테 당했어요?”
“응?”
“아……아니에요.”
루카치는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갑자기 내 이름 불러줘서 놀랐지 뭐야.”
블레어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인간의 팔다리를 이식할 수도 있지 않아요? 굳이 기계 팔은 왜?”
“지금은 이쪽이 훨씬 편해. 작업할 때도 도움이 되고!”
정말이지 인간의 수족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기계 팔이 거뜬히 해내고 있다. 무거운 물건 옮기는 건 물론이고, 팔뚝에서 용접기가 나와 땜을 하고, 손등에서 내시경 렌즈가 나와 기계 조립에 더없이 최적화되어 있다. 루카치는 예의 지나가는 목소리처럼,
“사무라이들이 전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지. 예상한 공격이라면 칼날을 정면으로 받아도 살 수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공격엔 나뭇잎에도 심장을 베인다고…….”
루카치의 말엔 블레어의 마음속을 마구 뒤흔드는 것이 있다.
‘딱 내가 그 격이었단 말이지! 그렇지만 알아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무 힘도 없던 6살 철부지 소녀가……?’
루카치는 마치 연기하듯 궁상떠는 아줌마처럼,
“아이고, 오늘은 옛날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네!”
“루카치!”
“응?”
“아까부터 뭘 만들고 있는 거예요?”
“미래를 열기 위한 문이라고 해야 할까?”
루카치는 해치를 열고 기계 장치 속을 보였다. 언뜻 1인용 캡슐 침대로 보인다. 캡슐 침대와 다른 게 있다면 각종 회로가 회선에 연결되어 해치 위에 계기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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