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7
족쇄에서 벗어나고파
노마가 새근새근 잠자고 있다. 바람 빠진 풍선인형처럼 잠들고 있는 노마의 모습을 보며 블레어는 루카치의 말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들다.
‘퀸 마리의 최초 분신이라고?’
하긴 노마가 루카치에 대해 말해준 것도 믿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 어찌되었든 대단한 인물들! 태양계를 지배하며 전 우주를 누비는 패러독스의 여왕과 그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니……
“루카치?”
루카치는 엔진 가동 후 부지런한 꿀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응, 뭐?”
“우리가 떠나온 지 다섯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평온한 일상이 불만이란 거야?”
“아니, 밖의 풍경도 뭐 이래? 여기 우주 공간 맞아?”
우주선 창문 밖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밖은 온통 밀도 높은 구름 사이를 지나치는 비행선처럼 하얀 빛이 무성하다.
“MK엔진엔 두 가지 놀라운 기능이 있어. 초광속 운동과 차원 간 여행이 가능하지.”
“밖은 왜 이래?”
“초광속으로 날고 있기 때문이야. 빛입자를 초월하면 물질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지.”
“그럼 우리가 물질을 초월해 있다는 거야?”
“음, 우리 우주선은 하나의 초월입자가 되어 이론적으론 어디에고 존재할 수 있게 돼.”
“어디에고 존재할 수 있다니?”
“공간에 놓여 있는 게 물질이야. 공간이 사라지면 물질은 어디에 존재하게 될까?”
“그……그건 생각 좀 해봐야겠어.”
“비슷한 질문을 그전에도 했었는데……?”
블레어는 퉁명스런 표정으로 시치미 뗀다.
“첨 듣는 얘긴데……! 근데 아까부터 왜 그렇게 분주해?”
“밥 먹어야지.”
뭔가 심오하고도 중대한 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 왠지 루카치의 얼굴표정이 분장한 피에로처럼 느껴졌다.
“밥?”
“밥 먹지 않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해?”
“초월입자가 되었다며?”
“신선도 먹어야 살아, 노마를 깨우기나 해.”
그리 보니 루카치는 여태까지 열심히 요리 중이었다. 식탁에 음식접시를 나르고, 아기문어 아니게가 루카치를 돕는다. 블레어는 노마의 뺨을 간지럽혔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인형처럼 노마의 몸이 축 늘어져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다.
“노마?”
심상찮음을 느꼈는지 루카치가 다가왔다.
“왜 그래?”
“노마가 이상해.”
“왜 이러지?”
퀸의 자기장의 흔적을 지우는 수정구슬이 노마의 가슴팍에서 빛나고 있었다. 블레어는 그것을 집어내며,
“설마 이것 때문에 그래?”
“그럴 리가 없는데…….”
자세히 보니 수정구슬 안의 다이아몬드 발광체가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다. 루카치가 소리쳤다.
“뭐야? 이건 이중 교란(multi-polize)인가?”
“그게 뭔데?”
“퀸의 자기장 영역에 반응하는 장치 말고도 노마의 몸속에 또 다른 의식조절 장치(monopolize)가 있다는 뜻이야.”
“뭐……야?”
“이런, 우리 위치가 노출되고 있었어.”
루카치가 어금니 깨무는 모습을 보니 절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우주선 선체가 흔들리며 식탁에 차려져 있던 음식들이 쏟아진다.
“어떤 놈들이…….”
충격으로 아니게가 창문에 머리를 부딪치며 용케도 월드컵 트로피를 받아낸다.
“도대체 누구지?”
“적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상대할 순 없어.”
루카치는 엔진을 끄고 스텔스 기능을 켰다. 곧바로 우주선이 멈추며 창문 밖으로 온통 하얗던 배경은 우주의 암흑물질에 휩싸인다. 그 덕에 비로소 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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